적지 않은 대학생들이나 G세대라 일컬어지는 젊은이들에게 지금 보거나 경험된 어떤 일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면 ‘아, 좋은 것 같은데요!?’ 라는 대답을 많이 듣게 됩니다. 이 대답 속에서 몇 가지 우리의 삶과 문화에 대한 의식의 특징을 엿볼 수 있게 됩니다. ‘좋은 것 같다’는 표현은 좋기도 하고 꼭 그렇지만은 않기도 하다는 감정의 애매모호함을 의미하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자신의 주관적인 느낌을 직관적으로 표명하는 데 분명한 자기 의지가 결여되어 있어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좋긴 하지만 너무 강하게 자신을 주장하다가 다른 이들의 이견에 부딪칠 우려를 하는 일종의 눈치보기도 그 속에 녹아 있는 듯합니다. 적당하고 완곡한 표현으로 남으로부터 비난이나 반대의견의 대립을 피해가려는 의도도 숨어있으리라 유추해 보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은 TV리포터 앞에서의 인터뷰에서도 종종 보게 됩니다.
학교 교육을 라틴어로는 ‘in loco parentis’라고 합니다. 영어로 말하면 ‘in the place of parents’ (부모를 대신하여)’라는 의미가 됩니다. 우리들이 받은 부모교육이나 우리가 하고 있는 사랑스런 자녀들의 교육은 대개의 경우 학교에 보내면 그것으로 교육이 다 이루어지는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모든 교육은 부모가 주도적으로 하는 것이고 학교는 부모의 대신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전제가 되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현대인의 삶은 그리 녹록하지 않고 바쁜 생활로 시간에 쫓기기 마련입니다. 너무 바쁜 생활로 자신을 돌아볼 겨를도 없어 보입니다. 왜 바쁠까요? 잘 살기 위해서 입니다. 잘 산다는 것은 대개의 경우 부유해지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한국의 TV광고 중에는 ‘부자 되세요’라고 아예 슬로건을 내걸어 국민 계몽이라도 하는 듯합니다. 무차별 광고가 반복되는 동안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것에 세뇌되고 그것이 마치 정당한 패러다임으로 굳혀지기도 합니다. 잘 사는 것이 자신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태어난 목적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현실이 낳고 빚어놓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돈으로 해결할 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돈을 벌어야만 하고 미래를 위해 비축해 놓아야만 안정을 찾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삶이 빚어내는 많은 문제들이 돈으로만 다 해결되지 못하는 것을, 그리고 비축한 돈에 의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오히려 어려움과 패망의 길로 빠져들고 인생이 무너져 내리는지를 말입니다. 그들 속에서 믿고 신뢰하는 것이 깨지는 허망함을 보게 됩니다.
최근, 한국민 생활시간 풍속도에 관한 조사에서 10세 이상 국민 가운데 70% 가까이가 평소 바쁘거나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음을 봅니다. 이러한 생활습관과 삶의 철학은 파리에서도 그대로 재현됨을 보게 됩니다.
모든 이들이 알고 있듯, 파리의 거리는 거대한 미술관이며 문화의 보고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유학을 왔든, 사업을 위해 왔든 온 지 십 수년을 넘겨도 아직 에펠탑 꼭대기를 올라 파리의 야경을 내려다보지 못했다는 이들이 많음을 듣게 됩니다. 살아있는 문화의 거리를 지나면서 바쁘게만 살아간다면 몸은 파리에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한국에 머물고 있는 거나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숨을 쉬는 공기가 그러하듯 없어서는 안되나 있는 것 자체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문화입니다. 물건은 당장 사서 욕구를 채울 수 있지만 문화란 단숨에 구입해 쓰고 마음의 빈 곳을 채울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예술품을 언젠가는 보리라는 생각은 언제나 그렇듯, 향유하지 못한 채 1년, 2년을 넘기기 일쑤입니다. 내일이 항상 대기하고 있는 것처럼 믿어서는 안됩니다. 내일은 신뢰하고 약속된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퐁피두센터를 지나 우측으로 돌아서면 커다란 분수대가 펼쳐집니다.
겨우내 움츠렸던 분수대가 봄을 맞이하며 물을 뿜어냅니다. 그 분수대 안에 현대조각들이 끊임없이 움직이며 물을 뿜어내면서 자신들의 축제를 벌입니다. 싱그러운 봄의 내음과 함께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과 함께 움직이는 조각들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경쾌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러한 발랄한 정경도 그곳에 가보지 않으면 모두 무의미한 이야기일 뿐입니다. 삶을 향유한다는 것은 그러한 열정과 시간을 마땅히 허여할 작정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정신의 윤택함으로 우리의 삶이나 그 뒤를 이을 다음 세대들이 남의 삶과 비교를 하고 끝없는 무한경쟁으로 피폐해지지 않기를 기대해 봅니다.
이제 젊은이들이 자신의 의견을 답할 때 ‘좋은 것 같은데요! ? 가 아니라 프랑스 사람들처럼 ‘C’est bien 정말 좋아요!’라는 분명한 대답을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성공에 이르는 첫걸음은 자신이 마음속으로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발견하는 일이라고 칸트는 말합니다.
진정으로 우리가 하는 일을 사랑하면서 기쁨으로 자신의 생애를 건축할 수 있는 일을 이 거대한 문화의 대지 위에서 찾는 일이 보다 더 소중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