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군대생활 19
37. 17기 후배, 교육장교 김재성
나는 제대 후 몇 년 만에 내가 근무했던 102 야전병원으로 예비군 동원훈련을 하러 간 적이 있었다. 이때에 훈련을 마친 후 하루를 더 머물렀고 아직 그곳에서 근무하던 옛 동료들도 만나고 병원을 둘러보며 감회가 새로웠었는데 병원 행정반에서 엄청나게 잘 만든 교육자료 와 궤도 등을 보게되었다. 그런데 겉 표지를 보니 '교육장교 중위 김재성 작성' 이라고 쓰여있었다. 그것들이 모두, 나의 고등학교 2년 후배이고 내 동생 윤제와 같은 학년이었으면서 대학은 또 나의 서울약대 후배이던 김재성군이 ROTC 17기로 임관하여 이곳에 교육장교로 근무하면서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재성이는 글씨도 잘 쓰고 기획력이 뛰어나서 약학대학을 다닐 때에도 혼자서 남한 전국 각지를 돌아 다니며 100 여 장 이상의 탁본을 떠서 그 자료들을 모아 가을 학교 축제 때에 탁본전시회를 열었던 후배였다. 나는 그가 만들어 놓은 그 교육 자료를 보고 감탄하였고 역시 그는 대단하다고 다시 한번 그를 인정하게 되었다. 그는 동아제약에서 근무하다 지금은 서울 근교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김재성 약국' 이라는 자신만의 약국을 경영하며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있다.
38. Epilogue
1979년 6월말로 우리들은 드디어 파란만장?했던 군대생활을 마치고 소집해제 된다. 이상 앞에서 이야기한 내용들이 내가 기억이 풀려가는대로 정리한 내 군대생활의 추억담이다. 좌충우돌, 온통 실수 투성이였던 젊은날의 추억은 때로는 괴롭고 안타깝고 어이없고 황당하고 웃기기도 했지만 그 기억들은 젊음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모든 일이 용서되고 포용되고 미화되어 예쁘게 포장된 추억의 상자 안에 담겨 오랫동안 선반 위에 올려져 있었던 것 같다.
젊을 때는 그것을 열어보기가 괴롭고 두려워서, 세월이 한참 지난 후에는 기억들이 탈수되면서 희미해지고 변형되었을까봐 열어보지 못했던 것들... 돌이켜보면 그때에는 우리가 젊었었고, 하고 싶고 놀고 싶은 일들이 많아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왜 그렇게 끈에 묶여 있는 개가 목에 묶인 끈을 풀고 달아나려는 듯이 군대생활을 자유가 없이 속박된 상황이라 여기고 어서 빨리 해방되기만을 기다렸는지 모르겠다.
어떤 사람들은 군대에 가서 2년을 썪으면 인생에서 가장 귀한 시절을 허송세월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세월이 흘러 그때의 나의 경험을 돌이켜 보니, 나는 절대로 그렇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는 길다면 길고 짧았다면 짧았던 2년 동안에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귀한 인연 속에 인간관계를 형성하면서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보다 나은 대인관계를 형성하는 방법을 체득하였다. 군대라는 녹록치 않은 상황 속에서, 그때 그때 수많은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그 상황을 헤쳐나가며 위기에 대처하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가는 것을 몸으로 부딪히고 체험하며 터득했던 것 같다.
나는 그 기간 동안에 학교에서는 가르쳐 주지도 않고 배울 수 도 없는, 삶에 대한 혜안을 기르고 인생을 통찰하는 인생 경험을 많이 하였다고 생각하며 그동안 마음의 키가 20 센티는 더 커지고 가슴도 훨씬 넓어진 느낌이었다. 따라서 이년간의 짧은 군복무는 내가 제대 후에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떠한 상황에 닥쳤을 때, 그 상황을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는 가치관과 결단력에 큰 바탕이 되었다. 또한 군복무를 통하여 나는 어떠한 극한 상황에서도 버틸수 있다는 자신감과 체력? 이 생겼다고 자부하며 인생을 바라 보는 눈도 더 성숙해져서, 미당 서정주의 싯귀대로 세상을 '누이의 병풍을 보듯 '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관조하는 자세를 터득할 수 있었던 귀중한 경험을 얻었던 것 같다.
군대생활은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하며 억지로 시간을 때우는 것이 결코 아니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개인주의, 물질주의가 팽배한 시대에는 군대의 단체생활은 자신이 받아들이기에 따라, 동료들과 함께 하는 협동심과 단결, 책임감과 희생정신을 배우는 귀중한 시간이 될 수 있고 인격적으로도 더 성숙해지는 기간도 될 수도 있어, 그 후 사회에 나가서도 공동체 안에서 훨씬 더 잘 적응할수 있도록 준비하고 연습하며 투자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젊은이라면 모두 군대에 가서 단체생할을 하는 경험을 하는 것이 후일 자신의 삶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내가 장교로서 국가에 대하여 봉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ROTC 제도에 깊이 감사하며, 함께 훈련을 받고 서로 도와주며 함께 젊은 날을 보냈던 삼천여명의 자랑스러운 나의 동기들에게도 깊이 감사한다. 다시 한번 실명이 거론된 동기들에게 본의 아니게 누가 되었다면 엎드려 용서를 구하고 방만한 이야기들로 공연히 동기들의 눈과 귀를 어지럽힌 것 같아 친구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다.
그리고 그동안 횡설수설 생각나는 대로 두서 없이 적어내려간 긴 이야기들을 너그럽게 이해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격려하며 기꺼이 함께 읽어준 모든 동기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앞으로도 우리 모두들, 국가와 민족을 사랑하고 가장 열정적이고 순수하던 젊음을 아낌없이 바쳤던 우리의 그 마음을 계속 지켜가며, 건강히 후회없는 활기찬 여생을 보내도록 노력하자!
Viva, ROTC 15기 !!
-完. 2023년 盛夏, 一樞 金永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