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군대생활 18
34. 검사와 병사
군단에도 검찰관이 한사람 있었는데 K 검사라고 나의 고등학교 1년 선배였다. 군대이지만 고등학교 선배들을 나는 형이라고 불렀는데 그 형은 매우 샤프하고 똑똑한 분이었다. 그 당시, 소위 말하는 고등고시는 1년에 백명 정도만 뽑았으므로 합격하기가 정말 어려웠고 더구나 대학 재학시에 합격하는 것은 본인이 노력도 많이 하였겠지만 천재 중의 천재가 아니면 힘든 일이었다. K검사는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는 병원에 자주 놀러와서 나하고도 친해졌다.
그런데 이때에 우리병원 인사과에 병원과 군단 검찰부를 왔다 갔다하며 서류를 전달하는 연락병이 한명 있었다. 그는 살살 웃으며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는 재주가 뛰어나서 우리 병원의 인사과의 최고참 상사가 매우 아끼는 병사였다. 그러나 그에 대한 나의 느낌은 별로 좋지 않았다. 나는 마음이 담기지 않은 말로 아부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그의 행동들이 진실성이 없어보이고 어딘가가 부자연스럽고 어색했기 때문이다. 그는 일등병인데도 인사계의 총애를 받아 어느새 인사과에서 가장 막강한 직책인 재무와 휴가증을 관리하는 자리를 차지하였다. 그는 공공연이 서울대 정치과를 다니다가 군에 입대하였다고 떠벌렸고 고시를 본다는 둥 하며 수시로 출장이나 휴가를 나갔고 그 때마다 인사계에게 선물을 사다 바치곤 했다.
그러더니 어느새 군단 검찰부를 왔다갔다 하면서 감언이설로 K검사님을 홀린 모양이었다. K검사가 그런 그를 이쁘게 보아 군단 소속 검찰부 사병으로 차출해 가겠다고 병원에 협조공문을 보내온 것이다. 나는 형에게 무엇인가 수상하니 그 애의 말을 전부를 믿지 말고 뒷조사를 한번 해보라고 조언했지만 현명하던 그는 무엇에 홀렸는지 막무가내였고 내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결국 검찰부로 차출되어 갔는데 얼마 후 일이 터졌다.
그가 떠난 후 병원 인사과의 후임자가 재무서류에 이상을 발견하였고 조사하여 보니 그는 군대의 공금을 횡령하여 휴가를 나가 놀러다녔고 심지어 그 돈으로 인사계 주임상사에게 선물을 사다 바친 것이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그에 관한 조사가 시작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가 서울대를 다녔다는 것도 고시 1차 시험에 합격하였다는 것도 심지어 그의 부유하다는 가정환경도, 그에 관한 모든 사실이 거짓이었다. 교활한 시골뜨기 거짓말장이에게 군단 전체가 놀아난 꼴이었다. 한 마리의 미꾸라지가 연못 전체를 탁하게 만든다는 말이 생각나게하는 일이었고 서양 속담에 too good to be true, it is not true 란 말이 꼭 맞는 말이었다. K 검사님은 얼마 후에 시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처녀와 약혼하면서 큰 의약품 회사의 사위가 되었고 최근까지 변호사로 활동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35. 논산훈련소 소대장 동기에게 편지 보낸 일
병원에 근무하던 어느날 잠깐 휴가를 나와 집에 가니 아버지께서 서울대 인문계열에 다니던 내동생 윤제가 2학년 1학기를 마친 상태에서 교련 반대 데모를 하다가 학적이 변경되어 군에 끌려갔으며 윤제가 입고 간 옷이 집으로 부쳐져 왔는데 피가 묻어 있었다고 매우 걱정하셨다. 이때에는 데모를하다가 군대에 끌려가면 그 학생들은 최전방으로 보내지고 요주의 사병으로 찍혀 죽도록 고생을 시킨다고 알려져 있었다. 아버지는 한참 걱정을 하시다가 논산에 사시는 고모에게 연락하시어 보안대 상사에게 돈을 주어 윤제를 후방으로 보내달라고 손을 쓰셨고 그 결과 윤제는 논산 훈련소에 기간병으로 남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전해들은 나는 찾아갈수는 없으나 동생 윤제가 걱정이 된 나머지 아무런 생각 없이, 논산 훈련소에서 훈련병의 소대장을 맡고 있던 나의 서울 약대 동기인 신형식 중위에게 동생 윤제의 이름을 적고 한번 찾아 보고 잘 좀 봐달라고 부탁하는 엽서를 보냈다. 봉함 편지도 아니고 누구나 볼수 있는 우편 엽서에 이런 사연을 적어보냈으니 나의 무지함이란! 나중에 제대하고 학교에서 얼굴이 검게 탄 형식이를 만났더니 "야, 임마, 보안대 검열에 걸리면 어쩌라고 그런 걸 엽서에 써서 보냈냐! " 하면서 난리를 쳤다.
그러나 허허실실 인지, 다행히 그 엽서는 아무 탈없이 그에게 전달 되었다.. 모두가 볼 수 있는 엽서에 설마 그 따위 부탁을 할 멍청한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보안대가 검열을 소홀히 한 탓이리라. 알고 보니 논산 훈련소는 군기도 제일 쎄고 기간병은 제일 힘든 곳이었다. 그래도 윤제는 그후 그곳에서 힘들었겠지만 나름대로 군 생활 잘 마치고 제대하여 복학하였다.
36. 전임약제과장의 방문과 새 약제과장의 부임
1979년 4월이 되자 새로 임관한 군의관들이 병원에 도착했는데 그 중 충청도 모대학 출신의 약물학을 전공한 군의관 x대위가 있어서 병원장과 상의하여 그에게 약제과장 자리를 물려주었다. 병원장님이었던 변해공 대령은 국군의무사령부로 전출 가시고 그 당시 병원장님은 새로 부임하신 이치우 중령님이셨다. 변대령님은 매우 치밀하고 꼼꼼하신 성품이어서 모든 일을 자신이 챙기는 스타일이었지만 이중령님은 loose 하고 모든 일을 부하들에게 맡긴 채 언제나 허허하고 웃으시는 설렁설렁한 스타일이셨다. 보직이 없어지자 나는 제대할 때까지 진달래 철쭉이 피는 봄을 만끽하며 간호장교들과 하사관들과 도시락을 싸 들고 설악산 줄기의 풍광 좋은 병원 근처 그 동네를 놀러다녔다.
그리고 그 때쯤에 나의 전임 약제 과장으로 나에게 인수인계를 하여주고 후방 병원으로 떠났던 나의 대학동기 홍효신 중위가 우리 병원을 찾아 놀러왔다. 그는 군번도 빨랐지만 ROTC 장학금을 받아 우리들 보다 2년간 더 군에서 복무하기로 되어 있어 우선적으로 의정병과를 받았고 보직도 처음부터 병원 약제과장을 부여 받았다. 말이 적고 수더분하면서도 down to earth style 인 그는 대전고등학교 출신 충청도 양반으로 말도 천천히하고 성격도 느긋하고 모든 일에 서두르는 법이 없이 여유가 있었다. 귀중한 휴가를 하필 전방으로, 옛날 근무하던 곳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고 찾아온 그가 반갑고 고마웠다. 그는 우리 비오큐에서 며칠 자고 함께 진달래 피는 병원 뒷산과 강가에서 잘 놀다 갔다. 홍효신 동기가 우리병원에 놀러오는 바람에 우리 병원 약제과에서는 3대에 걸친 약제과장 세명이 함께 만나 회식을 하는 진귀한 일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