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군대생활 16
32. 내 새 군화를 신고 휴가 간 약제병
어느날 약제병 천상병이 휴가를 나갔다. 그런데 내가 분창에서 쿠폰을 주고 사다가 닦아서 약제과 사무실, 내 책상 밑에 잘 모셔 놓았던, 나는 개시도 안한 새 군화가 없어졌다. (이때에는 일년에 한번씩 장교에게는 군화나 피복 등을 살 수 있는 쿠폰을 주었고 우리는 창에 가서 이것으로 필요한 물품들을 샀다). 그래서 다른 약제병 한 명에게 혹시 내 군화 못봤냐고 물었더니, 그가 말하기를, "과장님 책상 밑에 있던 군화 말씀이세요? 그거 천상병님이 휴가 갈 때 신고 나가셨는데요”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기도 안차서 말이 안나왔다.
그러나 그렇다고 휴가 나간 그를 군화 때문에 잡으러 갈 수도 없고 허, 군대 참, 군기가 빠져도 한참 빠졌구나,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뭐 누구를 탓하랴! 평상시에 너무 허물없이 잘 대해 주어서 나를 우습게 보게 만든 내 탓이라고 자책? 하면서 체념하는 수 밖에 없었다. 이래서 나는 멀쩡한 새 구두 한켤레를 두 눈 멀쩡히 뜨고 사병에게 빼았기고 말았다… 휴가에서 돌아와서도 내 것인지 모르고 신고 갔었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는 그에게, 휴가 기간 내내 신고 다녀서 그의 발 냄새가 배인 그 군화를 도로 뺏을 수도 없어서 그에게 기증, 그 신어보지도 못한 내 새 군화는 결국 그의 차지가 되었다.
그리고 어느날, 죄수들처럼 푸른 환자복을 입은 환자들 중에 파리한 얼굴의 낯익은 사병이 하나 있었는데 그가 먼저 나를 보고 아는체를 하였다. 그래서 이야기를 해보니 나의 고등학교 동창인 이xx 군 이었다. 그는 자기가 몸이 아파서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휴학을 하여 우리들보다 1년인가 늦게 졸업을 하였다는데 군대에 와서도 몸이 아파서 후송을 왔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런 인연으로 가끔 약제과에 와서 일도 도와주고 놀다 갔다. 그는 그 당시 오랜 연애 끝에 벌써 결혼을 한 상태였고 자기 아내의 사진을 가슴에 품고 다녔다. 그리고 자기 내무반에서 애인들의 사진을 놓고 누가 제일 예쁜가 시합을했는데 자기 아내가 1등으로 뽑혔다나 하면서 매우 자랑스워 하였었는데 그는 지금은 몸이 완전히 회복되어 건강해 졌을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