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군대생활 10
24.연대 지휘 능력 측정 훈련 RCT (Regiment Combat Training) 과 삼국지
대대측정도 끝나고 11월 말 12월초가 되자 전방에는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한 해를 마감하는 마지막 훈련 겸 측정인 연대 RCT 가 시작되어 옆 연대와 가상 전쟁훈련을 하였는데 이는 물론 연대장의 지휘능력측정이며 온 연대가 다 총 출동하는 대규모 훈련이었다. 우리 의무중대도 우리가 소속한 50연대를 지원하기 위하여 수 많은 앰블런스와 약품, 장비들을 싣고 보병연대와 포병 등 모든 부대의 뒤를 따라 나섰다. 함박눈은 펑펑 쏟아지는데 우리는 그래도 앰블런스를 타고 가지만, 보병, 포병 등은 완전군장을 하고 그 함박눈을 맞으며 무릎까지 푹푹 눈이 쌓이는 산 골짜기로 어두워질 때까지 걸어 들어갔다.
드디어 연대 작전참모의 지시로 한 곳에 야영지를 선택하고 큰 텐트를 치고 식사 후 모두가 함께 영하의 날씨에 덜덜 떨며 자게 되었다. 그러나 훈련 나온 위생병들은 마치 캠핑이라도 온 것처럼 즐거운 듯 열심히 장난을 치며 움직였고 누군가 어느새 이웃 동네에 찾아가 검은 소화제 한병을 주고는 김치를 한 바께쓰 얻어와 김치국과 찌개를 끓였다.
눈 속에서 저녁밥을 먹고 그렇게 그 밤이 지나고 다음 날부터 본격적으로 가상 전쟁이 시작되었다. 어떠한 상황이 전화로 내려오면 그에 맞는 조치를 서류상으로 취하고 전화로 보고하면 심판관들이 평가를 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셋째날 밤, 우리가 의무중대 본부 상황실에서 귀를 기울이며 열심히 전투 상황에 대하여 무전을 듣고 있는데 갑자기 50연대 1대대 3중대 전멸이라는 내용이 내려왔다. 우리는 놀라고 황당해서 이것이 지금 무슨 상황인가하고 더 자세히 알아보니 그 내용이 정말 기가 막혔다.
한 밤중에 3 중대가 고지를 향하여 돌격을 감행하였는데 그들이 탈환해야 하는 가상 적군의 고지에서 불빛이 반짝 반짝 거리더란다. 그래서 중대장은 “저 불빛을 향하여 돌격 ! “ 하며 중대를 셋으로 나누어 그 고지 정상으로 돌격시켰는데 병사들이 눈 속을 뚫고 넘어지면서 세 시간 이상을 기진 맥진 걸어 올라가 드디어 그 고지에 당도하여 적을 공격하려고 보니 적들은 하나도 없고 모두 다른 곳으로 피한 상태에서 척후병 세 명만이 불을 피우고 도란 도란 이야기하면서 모닥불에 손을 쪼이고 앉아있더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 광경을 본 심판관이, “야 이 놈들아, 모닥불이 켜 있다고 그곳에 적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곳으로 올라 와! 허허실실, 너희는 삼국지도 안 읽어 보았냐?” 하면서 “너희 중대 모두 다 전멸 !!” 하더란 것이었다.
우리는 기가 막혔지만 어쨋든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대량으로 후송되어오는 환자들을 신속하게 응급처치함은 물론 의무중대의 위생병 중 십여명을 그들을 지원할 목적으로 우선적으로 그곳으로 특별 파견한다고 상황에 대비 하였다. 그러나, 나름대로 발 빠르게 대처를 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의무중대장을 비롯한 간부들도 갑작스러운 황당한 상황을 맞아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지둥, 갈팡질팡 하였고, 나중에 지적받기로 대량 환자 후송을 위하여 헬리콥터를 요청을 하지 못했다는 등의 이유로 감점을 당하였다. 이래서 이런 저런 결과로 결국 우리 연대는 전투 훈련 결과 옆 39연대에게 패배하였으나...
그 연대에서 안전사고가 있어서 마지막 평가는 황당하게도 전쟁에 진 우리 연대가 승리한 것으로 판정이 났다. 그 까닭은 그 연대의 소대장 한사람의 안타까운 동사 사건 때문이었는데, 그곳은 산 속의 고지인데다가 눈이 많이 왔고 갑자기 기온이 많이 내려가 마지막 날 밤은 영하 20도로 몹시 추운 밤이었다. 우리들은 장병 모두가 함께 큰 텐트 안에서, 여분의 담요를 두장씩 더 깔고 덮어도 추워서 서로 두 사람씩 껴안고 잤다. 그런데 옆 연대의 소대장 한 사람이 추위를 이기려고 몰래 소주를 한병 마시고 잤는데 곁에서 함께 체온을 녹여줄 사람이 없는 소대장은 A 텐트에서 혼자 자다가 그만 새벽 강추위에 체온이 내려가는 저체온증으로 동사하였다는 소문이었다.
어쨋든 그 해에 동아일보에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발표된 이문열의 중편소설 군대 이야기 ‘새하곡’ 보다도 더 사건도 많고 더 황당했던 연대측정은 이렇게 지나갔다. 모든 훈련이 끝나고 비오큐로 돌아온 우리는 스트레스와 추위에 지쳐 쓰러졌다. 그리고 연대본부의 부관이나 참모 등 14기 보병 선배들과 다목리의 술집이나 다방에 다니면서 그 겨울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