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군대생활 7
16. 코가 삐뚤어진 병사
벙커공사가 한창이던 8월 무더운 어느 여름날 점심 때, 갑자기 대대장님의 호출이 있어서 달려가 보니 한 병사가 쓰러져 있는데 코가 삐뚤어져 있는 것이었다. 질통을 지고 오르던 그 병사는 너무 졸립고 피곤했는지 잠깐 눈을 감고 걸었고 순간 미끄러지며 넘어졌다는데 의식은 멀쩡하고 다친 곳도 손과 발, 엉덩이 타박상 말고는 없어 보이는데 코가 부러졌는지 심하게 삐뚤어지고 숨쉬기도 힘들다는 것이었다. 소대장, 중대장의 질책과 관심에 그 병사는 겁에 질려 자초지종을 설명도 못하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부대장이 아무리 부대지휘를 잘 해도 안전사고가 나면 지휘관은 당장 진급에 영향을 받게되어 있는 때라 사건 사고는 정말 중요한 일이었다.
걱정스럽게 병사를 바라보던 대대장님은 상부에 보고가 올라가는 일이 두려웠는지 나에게 조용이 자신이 치료비를 댈 터이니 어디 가까운 민간병원에 가서 치료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셨다. 그렇지만 나는 그냥 춘천후송병원에도 아는 사람들이 있으니 은밀히 그리로 데리고 가보겠다고 말씀드리고 그를 앰블런스에 태우고 화천댐 위의 아슬아슬한 절벽길을 두시간 넘게 전속력으로 달려 춘천으로 갔다. 그리고 춘천 101 야전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하여 정식으로 입원이나 외래진료를 신청하는 대신 약제과장을 하던 장현태 동기를 찾아 갔고 그의 도움으로 그와 함께 병사를 데리고 비공식적인 외래진료? 로 이비인후과로 갔다.
반사경을 쓴 이비인후과 전문의는 의료용 플래시의 불빛으로 그 병사의 코 속을 한참 유심히 들여다 보더니 콧속에 무엇인가가 박혀있는 것 같다고 하면서 핀셋을 코속으로 집어넣어 한참 동안 노력한 끝에 무엇인가를 조심스레 제거하였는데 그의 콧속에서 나온 것은 부러진, 뾰족한 작은 나무 가지였다. 그리고 나서 소독을 하고 코를 바로 잡으니 그의 코는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비교적 멀쩡하여졌다. 다행이 코 연골이 주저 앉거나 부러진 것은 아니어서 콧속의 상처 부위에 연고를 발라주고 항생제 처방을 받아 그날 저녁 늦게 그 병사를 데리고 대대 공사장으로 복귀하였는데, 대대장님은 그 이야기를 들으시고 내게 수고하였다고 안도하시며 매우 감사하시는 것이었다.
다음날, 대대장님께서 전령을 통하여 나를 부르셔서 가보니, 대대장님과 함께 식사를 하도록 특별한 아침상이 겸상으로 차려져 있었다. 나는 그동안 통신소대장과 함께 구박을 받다가 갑자기 이 사건으로 인하여 대대장님의 특별 대우를 받게 되었고 내가 대대를 떠날 때까지 잠시 동안이나마, 수시로, 한쪽 구석에 있던 독립된 텐트에서 늘 홀로 식사를 하시던 외로운 대대장 님의 말 동무? 가 되곤하였다.
17. 전라도병사들의 단합
나는 군대에 갈 때까지 전라도 사람들 어쩌고 하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내 주위에서 대학 친구들, 순천 출신 조용한이나 아버지의 고향이 고흥인 김상철 등 친구들로 부터 과분한 우정을 경험하였기에 전혀 편견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3대대 의무대에 도착하니 병사도 몇 되지 않는데 유치수 병장이라는 사병을 중심으로 전라도 병사들이 똘똘 뭉쳐 그쪽의 신병이 오면 잘 대해 주고 따로 불러 술을 사주는 등 특혜를 주는가 하면 다른 사병들과 다툼이 생기면 적극적으로 과보호해주는 일을 자주 보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좋게 볼 수도 있었지만, 예를 들어 경상도 출신 상병이 전라도 출신 일병이 무엇을 잘못하여 야단을 치면 바로 전라도 출신 병장이 경상도 출신 상병을 다시 야단치는 일이 생기고 그래서 갈등이 고조되곤 하였다. 그래서 이런 것을 없애 보려고 나름대로 노력해보았지만 그럴수록 역효과가 나고 힘이 들었다. 나는 지금도 지역감정같은 이런 것들은 우리가 없애야 할 폐단이 아닌가 생각한다
18. 소대, 중대, 대대 ATT 훈련 (Army Training Test)
벙커공사가 끝나고 대대가 부대로 복귀한 뒤에 곧바로 중대, 대대 전투능력 측정이 차례로 시작되었다. 이는 지휘관의 부대 지휘 능력을 측정하여 평가하는 것으로 지휘관들에게는 진급과 바로 연결되는, 매우 중요한 훈련 측정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측정의 기준은 예를 들면 전 중대원이 완전군장을 하고 구보로 10킬로미터를 50 분안에 들어와야 한다거나 전 중대원의 사격은 80% 이상을 받아야 한다거나 하는 것 등인데 단 한명의 낙오자가 있어서도 안되고 중대의 기록은 가장 나중에 들어오는 마지막 병사의 성적이 중대 전체의 성적이 되므로 소대장이나, 중대장은 사병들을 열심히 훈련시켜 낙오병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언제나 낙오자가 있기 마련이므로 소대장은 자신의 총과 군장 외에 낙오한 사병의 총과 배낭을 대신 짊어지고 그 낙오병을 질질 끌다시피 이끌며 함께 달리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보병 소대장 동기들의 뛰어난 체력, 위대한 희생정신과 리더쉽을 이때 다 본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그들이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중대, 대대 ATT 측정시 의무대의 임무는 미안하게도, 앰블런스를 타고, 완전군장을 하고 총을 들고 구보하는 보병 중대 또는 대대의 병력의 뒤를 천천히 따라가가면서 낙오병이 생기면 그들을 앰블런스에 태우고 응급처치하는 것이 주임무였다. 나도 앰블런스를 선임탑승하고 대대 병력의 뒤를 따라 가는데 병사들에게는 뛰기 전에 전해질 불균형을 방지하기 위해 억지로 소금을 한 수저씩 먹여도 구보를 하다 지치고 힘이 들어 길바닥에 누워 토하는 사병, delirium :섬망(譫妄)( '헛소리 섬, 망령될 망'이라는 뜻의 한자로. 부교감신경의 과다 흥분으로 매우 갑작스럽게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정신 착란 상태) 이 오면서 갑자기 벼이삭이 패기 시작하는 논두렁으로 뛰어들어가 춤을 추면서 남의 논을 망치거나 쉐도우 박싱 자세를 취하고 달려들거나 울거나 고성방가하는 사병들이 생겨 그들을 진정시키고 부축하여 차에 태우느라 애를 먹었다.
어쨋든 보병 대대는 봄부터 소대, 중대, 대대 별로 훈련준비를 하고 측정을 받느라 초가을까지 매우 바빴었다.